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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 보고서

경주 캠핑1. 석굴암이 문무대왕릉, 감은사를 일직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썰에 대해.

by 키레네00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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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이 평일 휴가를 얻어 경주로 캠핑을 갔다. 

 

정말 먼 곳이지만 아드님의 현장학습을 위해 책에나 나오는 실물을 보기 위해 경주로 고. 

 

가는김에 캠핑은 바닷가로 선정. 

 

 

여행의 숙박을 캠핑을 해결하니 몇가지 좋은 점들이 있는데, 

 

경주쪽 캠핑장 1박 비용이 저렴한편이다. 2박을 하니까 할인해줘서 5만원에 2박3일 해결. 

 

리조트나 다른 숙소를 잡을라고 하면 2박이면 한 못해도 15만원~20만원은 들텐데..

 

 

그리고 간만에 캠핑도 갈 수 있어서 일타쌍피??

 

어느정도 거리두기도 되고, 나름 괜찮았다. 

 

단점은 아직 밤 날씨가 다소 쌀쌀하다는 점. 그리고 조금은 씻고 싸고하는게 불편? 짐을 싣고 풀고 싸고 하는것에 대한 불편???? 

 

그런데 코로나땜에 어디 제대로 가지도 못하는데 어딘가 가서 그냥 숙소안에만 박혀 있을려면 애써 나간 보람이 없지. 약간의 육체적 힘듦은 감수하고 다녀올만 했다. 

 

요새 포항, 경주쪽 고속도로도  상황이 좋아서 과거에 두어번씩 쉬고 4~5시간씩 걸리던게 한두번 휴게소 들리고 3시간반이면 간다. 

 

그러고나서 아드님이 보고싶어하던 석굴암을 먼저 갔다. 

 

불국사도 그렇고 석굴암도 누구에게나 익숙한 곳인지라 얼핏 식상할런지 모르겠지만 

 

아만보.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약간씩만 검색만 해보고 가도 발닿고 시선 닿는 곳곳마다 다르게 보일 것이다. 

 

요새도 수학여행을 경주로 많이 가는지 모르겠지만(코로나 이전에)

 

석굴암. 볼수록 대단한 작품이다. 태어나서 세번째 석굴암 순례다. 세계문화유산에 올라갈만하다.

 

다만, 관람시간에 비해서 가족이 방문하기에는 입장료, 관람료가 다소 비싼편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다고 하는 신라시대 김대성의 일화가 삼국유사에 실려있는데, 굉장히 설화적이다. 

 

전생의 김대성은 가난한 집 아들이었는데, 현생은 전생의 덕을 쌓은 결과라는 믿음으로 전재산이었던 밭을 절에 시주하였고, (마치 시주, 헌납 권장 스토리같다..)

 

얼마뒤 세상을 떠난 그는, 김문량이라는 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고하는데 김문량은 기록에 나오는 인물인듯 하다. 아찬, 중시라고 하는데, 이 관등과 관직명만 봐서는 초초 탑클래스 고위층까지는 아니고 고위층정도..

 

여튼 바로 부잣집 아들로 환생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님은 물론 전생의 어머니(살아 있었다. )를 모시고 봉양하였다. 

 

세월이 흘러 전생, 현생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게 되자.(현생의 부와 계급을 모두 상속받???)

 

각각을 위해 석굴암과 불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만 불국사는 다른 창건기록과 더불어서 처음지었다기보다는 김대성이 다시 중수, 중창했다고 보는게 현실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나는 경주시내를 바라보는 불국사이며,, 하나는 동해를 바라보는 석굴암일까. 

 

석굴암이 동해쪽으로 위치하고있다보니 동해에 있는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수증릉)을 일직선상으로 석굴암 본존불상이 바라보고있다더라!!..카는 이상한 소리가 십년전에도 누가 써놓은 글이 있는데, 

 

누가 이런 글들을 싸질러놓는건지..이런...ㅡ.ㅡ 실제로 포항, 경주사람들은 이걸 사실로 믿고 있는듯 이번에도 그런 소릴 듣고 왔다.

 

석굴암-감은사-문무대왕릉

 

이 셋은 결론적으로 일직선에 있지 않다. 

 

감은사지가 문무대왕릉 바로 근처에 있으니 마치 이렇게 해놓은 일직서상에 있는것같지만,  확대를 해보면 일직선에 있지 않다. 

 

위 지도 그대로 확대를 해본 것이다.  석굴암과 문무대왕릉을 이어놓은 선이다. 저 라인에 감은사지가 있을까??

 

놉!! ㅡ..ㅡ

 

감은사지는 저 라인 바깥에 강건너편에 있다. 

 

 

비슷한 썰인데 이런 신박한 썰도 있다. 2015년 버젼이다. 

 

저기서 언급된 수박씨닷컴의 이보람 선생님이 누군가를 찾아보자,

 

 

이사람이랜다...그래도 역사 강사라는 사람이 거의 뭐 국회의사당에서 태권V가 출동한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ㅡ.ㅡ 그냥 하는소리겠지??

 

석굴암에서 문무대왕릉을 잇는 선을 보면, 계속 첩첩산중을 지나간다. 실제로 석굴암에 올라가보면, 바다가 쫙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굳이 왜 내세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석불사, 석굴암이 엄연히 창건관련 기록도 있는데 왜 문무대왕릉을 굳이 비추거나, 바라보게 만드느냐고 해석을 하느냐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석굴암의 비밀!!" 이런식으로 제목 뽑아내기 좋은 소재기는 하지만

 

8세기 중후반의 불교적 의미가 삼국통일전쟁을 마무리지은 문무왕을 위시한 호국불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는 것은 조금 억지에 가깝다. 

 

8세기 신라는 백제 고구려 멸망했고, 당나라도 어찌저찌 물리쳤겠다 그야말로 평화시대, 전제적 정교시대로서 불교의 극성기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이 한참이던 7세기라면 모를까 8세기 중후반쯤 되면 호국이나 통일전쟁의 상징인 문무왕과 석굴암을 굳이 연결하기가 쉽지는 않다. 

 

상징적으로 각 층이 주변국들을 상징한다는 황룡사 9층목탑이라든가 당군을 물리치는 밀법주술을 했다는 사천왕사라든가 하는 것들은 확실히 호국불교로서 국가적으로 파이팅있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정책이나 전쟁이나 외교의 한 측면에서는 승려나 불교행사가 많이 활용되었기도 하다. 

 

그러나 8세기 시점의 불교는 국가적 번영과, 왕권이나 지배층의 정신적, 교리적 배경. 뭐 이런것 아닐까?

 

굳이 석굴암이 동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감은사나 문무대왕릉때문이 아닐 것이며 딱히 연결지을만한 단서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 이마에 보석이 빛을 받으면 문무대왕릉을 비춘다?? 

 

그래서 뭐??

 

같이 만들었다는 불국사 역시 삼국통일이나 전쟁이나 주요 왕들과는 관련이 없다.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의 명복을 위해 절을 조성했다고 한 점을 눈여겨봐야한다. 

 

불국사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으며 연화교, 칠보교, 백운교, 청운교를 통과해서 극락정토와 불국정토에 들어서는 이론을 구현해놨다. 

 

 

즉, 통일된 신라의 평화와 번영과 지배층의 현실관리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석가탑은 석가모니불, 다보탑은 과거불은 다보불을 의미한다. 현세부처인 석가모니의 설법에 과거불인 다보불이 나타나 석가모니의 설법이 옳음을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모습을 구현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즉, 석가탑과 다보탑 이질적인 두 탑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음은 그냥 해놓은게 아니다. 

 

 

게다가 불국사는 완전히 경주 시가지방향은 아니지만 토함산에서 내륙쪽인 서편에 있다.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산길로도 사람이 다닐수 있을만한 위치라서 지도상으로 보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석굴암이 나오는 것으로 되 있다.

 

따라서 석굴암과 불국사는 내가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불국사는 현실에서 엿볼 수 있는 구현된 불국정토.. 석굴암은 산등성이를 넘어(피안??) 도달하는 석가모니불의 윤회사상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는 세계?? 그런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실제로 짧은 시간이지만 석굴암 앞 본존불상 앞에 서면 압도적인 분위기가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든다. 

 

부처님 이마에서 빛이 나와서 문무대왕릉을 비춘다는 이유도 없고 맥락도 없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통해서 이 시기의 시대상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더 흥미진진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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