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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보고서

[고대사] 낙랑군의 위치에 관한 논쟁들을 보며 드는 생각.

by 키레네00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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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지만 한때는 낙랑이라든지, 옛 조선이나 삼국시대의 강역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 이전시대는 물론이고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은 물론, 고려, 조선까지도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배우고 있는 역사는 일본의 왜곡과 조작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음????

 

물론 일본은 조선 식민통치를 위한 역사조작을 한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이다. (너무 엇나간 주장까지 왈가왈부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

 

그게 어떻던간에 내 생각에 일본입장에서 역사 조작을 한다면, 기왕이면,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조작(?)하는 것보다 요서나 요동에 있다고 조작하는것이 조선을 지배하는 일본입장에서 자신들의 대외정책상 더 유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낙랑이 요서에 있었다면, 굳이 그걸 막대한 돈과 인력을 들여서 평양으로 조작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로인해 당시 일본이 얻는 이익이 뭐냐는 거지. 

 

하지만 조선을 차지하고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야욕이 있던 상태에서 일본은 조선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또는 일선동조론을 내세워) 자신들 일본이 곧 조선, 낙랑은 요서에 있었고, 그 요서지역까지 일본이 차지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상 무리가 없다..라고 주장하기에 더 좋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굳이 일본이 역사조작을 가한다면 그쪽이 더 일본에 유리하지 않았을까? 나는 늘 그게 의문이었다는..

 

아니면 대륙의 역사를 반도역사로 축소시킴으로써 조선인들이 스스로의 역사에 열등감을 가지게 한다는 목적??

 

그런데 조선시대 이래 대체로 왕검성=낙랑=평양 이라고 여겨왔는데 조선초 세종대에도 평양의 단군사당 등 기사가 있으므로 사실여부를 떠나서 대체로 평양을 옛 조선의 도읍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삼국사기나 고려사에도 평양을 단군과 연관짓는 문구들이 나온다.)

 

그당시 인식이 그러한테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고 일본이 역사조작작업을 한다고 해서 요녕지방에는 살아본적도 없는 당시 피지배 평범한 한국인들이 정신적 데미지를 입거나 역사적 열등감을 가지거나 하지는 않았을것 같다. 오늘날에도 현대적인 주입식 교육(??)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대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주에선 사진남기고 황리단길에서 맛집찾아다니고 하는게 대부분인데 그 당시에 낙랑이 평양이냐 요서냐의 문제는 정치하거나 글 배운사람들 사이의 문제였지 않았을가. 

 

게다가 유적, 유물 조작은 수많은 돈과 사람들이 투입되는 일인데, 당시 한국인 지식인층이나 민족언론쪽에서 이를 문제삼거나 지적하는 모습이 전혀 관찰된적이 없다. 최근에는 당시 조작을 주도한 일본인 학자의 일기에서 중국 여러지역으로부터 낙랑 유물을 대거 사들였다는 고백(??) 자백(??)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해외반출된 유물을 사들이고 중국 갑골문 같은 것도 100% 발굴에 의한게 아닌데 구체적으로 그 일본인 학자가 무슨 유물을 어디서 어디로 누가 얼마에 어떻게 사들였다는것은 안나온다. 물론 사들였으니까 사들였다고 했겠지. 그런데 그게 수백년 이상을 존속한 역사를 저쪽에서 이쪽으로 통째로 옮길수 있을정도였는지는 굳이 말 안해도 될 것 같다. 심지어 광복 이후에 북한이 발굴한 낙랑유물들에 대해서도 조작되었다고 하거나 일제가 차후에 발굴하려고 미리 묻어둔건데 해방되는 바람에 북한이 발굴한 것이라는 주장도...이쯤되면 뭐 더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리고 한사군, 한군현을 식민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케이스가 굉장히 많아서 무슨 무역거점이었다던지...실제로 군현은 설치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던지 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식민지"라는 단어에서 굉장히 벗어나고 싶어하고 부정하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 "식민지"라를 단어를 안쓰면 그만이지... 일제치하 일제강점기를 과민하게 투영한 그들의 용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이 다른 나라의 간섭이 극심했던 시기인 몽골간섭기나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를 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가 인접국가를 점령하고 만든 군현이 낙랑 등 4군만 있는게 아니다. 진나라때도 마찬가지고 상당한 숫자의 군현이 이웃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것들인데 어떤건 식민지로 부르고 어떤건 아니고 어디부터 식민지고..그런 구분이 당시에 있었던건 아니니까. 다만 조선뿐만 아니라 사방팔방에 거리가 먼 정복지 군현들에 대한 정책이 어떠했는지는 살펴볼 필요는 있다. 예전에 조선과 같은 시기에 한나라에 의해 군현이 설치된 서남이(西南夷) 지역과 한사군을 비교한 논문이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지면 한번...(일부러 공부하자는 주의는 아닌지라 언제 볼수 있을런지..)

 

낙랑이 요서에 있었다고 해서 우리 역사가 자랑스러워지는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근거라고 내세우는 자료들이 있는데, 다음에는 고것들을 한번 살펴볼까 한다. 그 주장의 주요 근거로 사용되는 키워드는 3가지로 압축된다.(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걸 잘정리해둔 글들은 줄곧 검색이 된다.)

 

1) 평양이 아닌 요서 또는 요동으로 볼수 있는 낙랑의 기록.

2) 갈석산

3) 패수

 

이 세가지가 그쪽 주장의 핵심적인 것 같다. 그외 조작 주장이나 기타들은 일단 접어두고 기록상 이 세가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기록은 존재하고 그걸 가지고 주장을 하는거니까 이 사람들이 뭘 가지고 주장을 하는지 살펴보자. 

 

노트북을 뒤져보니 옛날에 정리해둔 자료들이 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취미삼아 찬찬히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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